런던에 간다

evernote1. 약간은 충동적으로 휴가 일정을 정하고 런던 비행기표를 끊었다. 크리스마스 출발. 10박 11일. 뼛속까지 추운 한 겨울 런던으로 간다. 3시면 해가 떨어지는 겨울, 런던. 종종 꿈에 나타나곤 했던 그 도시에 간다.

2. 이번이 세 번째다. 2007년 가을부터 이듬해 여름까지 어학연수를 핑계 삼아 런던에 머물렀고, 2013년에는 (지금은 이전 직장이 되어버린) 회사 동료와 함께 해외 기획취재에 선정돼 또 핑계 김에 며칠 지냈다. 이번에 가면 뭘 해야 좋을지, 문득 생각했다.

3. 퇴근 후 서점에 가서 여행책 코너를 서성였다. ‘0박0일 추천 일정!’이니 ‘꼭 가봐야 할 곳’이니 하는 말들은 와닿지 않았다. 잔뜩 감상에 젖은 여행기도 별로. 그러다가 한 때 챙겨보던 웹툰 ’루나파크’ 작가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4. 절반쯤 읽다가 뭔가 메모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왜 또 거기에 가려고 하는가. 가보지 않은 수많은 곳을 뒤로하고 나는 왜 또 런던에 가는가. 게다가 그 춥고 컴컴한 겨울에. 메모장을 꺼내놓고는 한참을 망설였다.

5. 그리워서. 그게 결론이었다. 때론 서러웠고, 철 없이 가벼웠으며, 무모할 만큼 겁이 없던 시절이었지만, 10여년 전 나는 또 봄 날의 민들레처럼 한 없이 가볍고 훨훨 자유로웠다. 런던은 그런 공간이자 시간이었다.

6. 꽤 자주 꿈에서 런던에 갔다. 상황은 매번 달랐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시간에 쫓기고 있었다는 것. 여기를 꼭 가야 하는데 비행기 시간이 다 됐다거나, 귀국 날짜를 착각해 일정이 엉망이 됐다거나. 나는 발을 동동 구르곤 했다.

7. 목록을 적어내려갔다. ‘그리웠던 것들’. 쓱쓱 제법 긴 목록이 만들어졌다. 적어놓고 보니 그리 대단한 것들은 아니었다. 공원에서 낮잠자기, 무작정 거리 걷기, 사람 구경하기, 미술관에서 멍때리기. 샌드위치, 에그누들, 카페모카. (+아스날…)

8. ‘준비광’과는 꽤 거리가 멀지만, 이번 여행을 촘촘히 준비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강박적으로 시간을 쪼개 (환상 속에서나 존재하는) ’완벽한’ 계획을 끼워넣을 생각은 없다. 다만 그저 시간에 쫓기지 않고, 후회를 남기지 않기를. 그저 흠뻑 취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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