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밥상을 걷어차고 싶다

해외 축구를 즐겨 보는 편이다. 하필 응원하는 팀도 있는 탓에 경기가 있는 날이면 대개의 경우 밤잠을 설쳐가며 중계방송을 시청한다. ‘팬질’도 종종 한다. 홈 경기를 직접 관전하거나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원정 경기에 따라가던 시절도 잠깐 있었다. 요즘은 주로 유니폼 레플리카를 사 모으거나 관련 물품을 수집한다. 기본적으로 ‘팬질’은 물질적, 시간적, 육체적, 정신적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일이다. 특히 응원하는 팀의 성적이 들쭉날쭉한 경우라면 더 그렇다.

관련 뉴스를 열심히 챙겨 읽는 건 ‘팬질’의 기본에 속한다. 국내에도 해외축구를 다루는 기사가 제법 많다. 해외축구 관련 기사는 포털사이트에서도 제법 좋은 자리를 배정 받는다. 외신(대개의 경우 출처가 불분명하거나 신뢰할 수 없는)을 단순히 얼기설기 번역한 기사가 여전히 적지 않지만, 제법 나름의 체계를 갖추고 수준 높은 기사를 내놓는 매체도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내가 즐겨 읽는 건 영국 가디언(Guardian)의 ‘Football’ 섹션이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응원하는 팀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 속해 있다는 게 첫 번째다. 어렴풋하게나마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외국어가 영어 뿐이라는 점도 중요한 이유다. (어떤 측면에선 이해할 부분도 있지만) 국내 매체들의 해외축구 기사가 여전히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점도 크다. 적지 않은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까닭이다. 가디언이 이 분야에서 최고의 매체인지 판단할 능력이 내게는 없다. 다만 감탄 했던 경험은 여러 번 있다.

유럽 축구에선 여름과 겨울에 큰 장이 선다. 이적시장이다. 가디언은 2013/14시즌 여름 이적시장을 이렇게(클릭) 정리했다. 113년에 걸친 전 세계 축구 선수들의 이적사(史)를 인터랙티브 그래픽으로 선보이기도 했다. 어디 그 뿐이랴. 경기 전에는 축적된 데이터에 근거한 프리뷰 기사가 올라온다. 주요 경기의 경우, 경기 중에는 기자의 분석과 독자의 반응이 가미된 실시간 문자중계가 이뤄진다. 경기가 끝난 뒤엔 통계에 바탕을 둔 분석 리포트가 이어진다.

2014년 2월18일(현지시각),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 레버쿠젠 : 파리 생제르망 경기에 대한 가디언의 문자중계 페이지.

2014년 2월18일(현지시각),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 <레버쿠젠 : 파리 생제르망> 경기에 대한 가디언(Guardian)의 문자중계(Minute-by-Minute report) 페이지.

가끔은 ‘참 꼼꼼하기도 하다’ 싶을 때도 있다. 어떤 구단의 팬이 경기장 안팎에서의 ‘폭력적 행위’로 가장 많이 체포됐는지를 기사인포그래픽으로 다루기도 하고, 각 구단들이 경기장 밖에서 재정적으로 어떤 성과를 올렸는지를 종합해 분석하기도 한다. 경기 티켓 가격이 지나치게 높다는 불만이 제기되자 유럽 주요 1부리그 모든 팀의 경기장 입장권 가격을 조사해 비교하기도 한다. 고품질의 기사를 일상적으로 접하며 ‘팬질’의 수준도 덩달아 올라간다.

기자들은 기사만 쓰지 않는다. 19일(현지시각) 밤 펼쳐지는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 <아스날 : 바이에른 뮌헨> 경기를 앞두고 ‘웹챗’ 페이지가 열렸다. 경기 전술, 선발라인업 예상 등 독자의 질문이 이어졌다. 기자는 자신의 취재와 경험, 분석을 바탕으로 궁금증에 답한다. 기자들이 모여 매주 2회씩 한 시간 분량의 ‘Football Weekly’ 팟캐스트를 방송하기도 하는데, 구독자가 수십 만 명이다. 독자 입장에선 진수성찬을 앞에 둬 황송한 느낌마저 든다.

K리그는 별 인기가 없다. 프로야구는 잉글랜드의 프로축구 열기에 크게 뒤지지 않을 것이다. 가디언의 축구 섹션에 비견할 만한, 야구 섹션을 구축하는 노력을 기울인 한국 일간지(가디언은 일간지다!)가 있었던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스케일’이 달라서 그런가 싶었다. 찾아보니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지난해 가디언미디어그룹(GMG)의 매출액은 2억680만 파운드(약 3680억원)다. (1등 신문) 조선일보 및 계열사의 2012년 매출액은 약 3620억원이다.

뉴스의 ‘품질’ 차이는 명확하다. 물론 한국에도 뛰어난 야구기자, 축구기자가 있다. 작지만 훌륭한 전문 매체들도 등장하고 있다. 다만 잘 보이지 않으니 애써 찾아 다녀야 한다. 거칠게 기사를 ‘요리’에 비유하자면, 요리는 시간과 돈, 또 기술이 필요한 일이다. 일상에 바쁜 대부분의 독자들을 대신해 밥상을 차려야 하는 건 언론이다. 우리는 왜 매번 그 밥에 그 나물이 올려진 밥상을 마주해야 하나. 더 큰 문제는 야구기사, 축구기사만 이런 게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의 '팬심'이 부족하기 때문일까? .... (사진 출처는 y.caradec via Compfight cc

우리의 ‘팬심’이 부족하기 때문일까? …. (사진 출처는 y.caradec via Compfight cc

법정에서 드러나고 있는 새로운 사실, 검찰이 밝혀내는 새로운 혐의, 경찰이 들려주는 초기 수사의 뒷이야기, 정당이 확보한 새로운 첩보, 청와대와 국회를 오가는 물밑 대화, 이를 보도하는 한국 언론의 매커니즘 등이 각각의 방식으로 보도되고 있다. 지면과 방송에서 이 사건은 어지럽고 복잡하다. 퍼즐 조각을 마당에 뿌려놓고 독자(시청자)들이 알아서 짜 맞추길 기대하는 모양새다.

이 정도까지 왔으면, 그리고 매일 관련 뉴스가 쏟아지고 있는 형국이라면 뉴스룸 차원에서 사건의 모든 측면을 아울러 심층보도할, 출입처를 넘어서는 대규모의 특별취재팀을 운용할 만도 한데 그런 언론사가 없다. ‘집단지성’의 방식으로 언론이 전력을 기울이지 않는데 대중이 왜 굳이 어렵게 지혜를 자내어 이 사태의 본질을 고심하겠는가.

-안수찬, <뉴스가 지겨운 기자>, 269~270쪽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이야기다. 1년이 넘도록 의혹은 여전한데 어느 것 하나 말끔하게 정리된 게 없다. 권력은 은폐와 ‘모르쇠’로 일관하고, 야당은 무기력하다. 사람들은 이제 ‘그려려니’ 한다. 언론의 책임이 크다고 봐야 할 것이다. 밥상을 제대로 차릴 마음이 없으니 독자들은 근근이 연명하는 수밖에 없다. 어디 그 것 뿐일까. 사건이나 발언을 무의미하게 나열하고, 진실을 추적하기보다는 으레 ‘공방’으로 뭉갠다. 독자들은 자꾸 뉴스 밖으로 밀려난다.

뉴스 소비자의 대표 유형이 있다. 기자의 직속 데스크(다른 부서 데스크는 읽지 않는다), 같은 출입처의 경쟁 매체 기자(다른 출입처 기자들은 읽지 않는다), 그 출입처의 공보 담당 관료(다른 공무원들은 읽지 않는다), 그리고 고향에 계신 부모님(부모는 내 기사를 반드시 읽는다) 등이다. 도대체 기사는 누구를 위해 씌어지는가.

한국 언론이 생산하는 기사는 엘리트의 장르가 되고 있다. 뉴스 품질이 탁월해졌다는 것이 아니다. 파워 게임에 관심 있는 엘리트만 소비한다는 뜻이다.

-같은 책, 196쪽

약간의 과장이 섞여있지만 틀린 이야기라고 할 수도 없다. 문제는 또 있다. 또 다른 한 켠에는 ‘네이버 저널리즘’이라도 통칭해도 좋을 뉴스들이 있다. 온갖 ‘충격’과 ‘경악’에 휩싸인 기사들, ‘실급검’에 짜맞춘 뒤 ‘네티즌들은 ~ 반응을 보였다’로 끝나는 그런 기사들이 있다. ‘기사’라고 부르기에도 낯 뜨거운, 그런 쓰레기들이 널려 있다. 진수성찬은 커녕 불량식품과 음식물쓰레기들로 가득한 밥상을 마주하다보면 독자로서 모욕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같은 종류의 상품인데도 ‘품질’에 차이가 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인다. 가령 생산시설이 열악할 수도 있고, 기술과 노하우가 부족할 수도 있다. 한국 언론이 여기에 해당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오히려 문제는 다른 데서 찾아야 하지 않나 싶다. ‘잘 만들어 보겠다’는 의지나 ‘잘 만들어야 겠다’는 절박한 경쟁의 부재, ‘차려 주는대로 먹으라’는, 일종의 집단적 무의식. 독자보다는 권력을 향해 촉수를 뻗고 있는, 어떤 본능 같은 것들. 기괴하고 끔찍한 일이다.

‘신문의 위기’, ‘저널리즘의 위기’가 언급되기 시작한 게 벌써 오래 전이다. 위기도 익숙해지는 걸까. 속으로는 위기라고 생각하지 않는 걸까. 아니면 광고주를 협박하거나 상전처럼 모시면서 그럭저럭 성공적으로 위기를 지연시키고 있다고 만족하는 걸까. 어떤 것이든, 불행한 일이다. 최근 경주에서 벌어진 안타까운 참사마저 외신이 더 정확하게 보도했다는 지적을 보면서, 그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할까. 부끄러운 줄이나 알까. 나는 밥상을 걷어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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