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를 다루는 저널리즘의 자세 – 자동차 급발진의 진실

우리 주변에는 합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일들이 많다. 인류의 역사라는 건 어떤 면에서 이 ‘합리적 설명’을 쌓아가는 과정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해는 왜 동쪽에서 떠오르는지, 사과는 왜 나무에서 떨어지는지, 사람은 왜 병에 걸리는지와 같은 것들에서부터 왜 빈곤이 발생하는지, 왜 여성차별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것들까지. 인류는 많은 것들을 설명해냈고, 그렇게 지식의 체계를 이뤄냈다. 그럼에도 여전히 설명되지 않는 ‘비합리적 사건’들은 생각보다 자주 일어나고 목격된다. 우리는 그것들을 흔히 ‘미스터리(mystery)’라고 부른다.

사실 여기에서 ‘비합리적’이라는 표현이 썩 정확한 건 아니다. 굳이 풀어써야 한다면 ‘아직 합리적으로 설명할 방법을 찾지 못한’이 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인류가 체득한 두 가지의 믿음이 담겨있다. 1)당장은 알 수 없지만 어딘가에는 합리적으로 설명할  방법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 2)모든 현상과 사건은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믿음. 따라서 무엇이 ‘불가사의하다(mysterious)’는 건, 현시점에서 인류가 그걸 합리적으로 설명해 낼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붙여진 ‘잠정적’ 표현일 따름이다.

Photo: Mister Phill via Compfight cc

Photo: Mister Phill via Compfight cc (본문 내용과 관련 없음)

자동차 급발진은 수많은 미스터리 중 하나다. 액셀레이터를 전혀 밟지 않았거나, 약하게 밟았음에도 불구하고 엔진이 제멋대로 순간적으로 최대출력에 가까운 힘을 내 자동차를 빠른 속도로 움직이게 한다. 브레이크가 작동되지 않는 경우도 많아 자동차는 즉각 통제불능의 상태로 빠지게 된다. 연구와 설계, 테스트를 반복하면서 자동차 제조사가 확보해 낸 합리성, 즉 자동차의 기초적인 기계적 원리가 무너진 것이다. 급발진은 크고 작은 사고로 이어진다. 사람이 죽거나 다치기도 한다. 무엇보다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위험천만하다.

급발진에 대한 연구는 1980년대에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위키피디아(영문)에 따르면,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은 1989년에 완성된 관련 보고서에서 급발진을 정의했다. 급발진 현상은 차종과 제조사를 불문하고 심심치 않게 보고돼 왔다. 원인을 규명하려는 노력도 계속됐다. 그 결과 다양한 가설(자동변속기 결함, ECU 등 전자제어장치의 오작동, 페달 오작동, 엔진 스로틀 멈춤)이 제기됐지만, 속시원한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제조사들은 대개 ‘운전자 과실’이라며 책임을 회피하거나, 적당한 보상을 안겨주는 방식으로 대응해왔다.

우리나라에서도 심심치 않게 급발진 사례가 보도되거나 온라인을 통해 전해진다. 관련 연구도 이뤄져왔다. 지난 2012년 5월에는 정부가 직접 ‘합동조사반’을 꾸리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자기가 실수를 했거나 확신범인 상황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며 운전자에게 책임을 뒤집어 씌우며 제조사에게 사실상 ‘무죄’ 판결을 내리는 한편, “현재 기술 수준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무책임한 결론을 내렸다. (왜 ‘무책임한 결론’인지는 ‘합동조사반 의혹’으로 검색(구글)해보면 금방 알게 된다…)

나는 자동차를 좋아하고 운전을 즐겨하지만, 급발진은 커녕 자동차의 작동을 설명할 수 있을 만큼의 기계적 지식을 갖고 있지는 못하다. 다만 자동차에 대해 가장 잘 아는 건 그 자동차를 만든 제조사(자동차회사)일 것이라고 믿는다. 하나의 자동차 모델에는 수 년의 연구개발 기간 동안 고도로 훈련된 개발인력 수 백명과 수 천억원의 비용이 투입된다. 제조사는 연구와 설계, 테스트와 생산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독점적으로 관장한다. 누구보다 가장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결함에 대해서도 가장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조립하다가 한눈 팔면 큰일 난다...

조립하다가 한눈 팔면 큰일 난다…

제조사가 ‘우리도 원인을 모른다’고 할 때, 얼마간의 진실이 담겨있을 가능성도 물론 있다. 자동차는 2만여개의 부품으로 조립되고, 무수히 다른 환경에서 사용(주행)된다. 서로 다른 부품들이 맺는 수많은 연관성, 또 완성된 자동차가 마주하는 수많은 주행조건/환경과의 상호작용 속에 예상치 못한 변수가 자동차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 급발진은 그 가능성이 현실화된 현상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미스터리를 풀 진실은 어딘가에 분명히 존재하기 마련이고, 제조사는 진실을 이미 알고 있거나 최소한 그 단서를 확보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나는 생각한다.

문제는 전 세계 어떤 자동차회사도 공개적으로 그걸 밝히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일본 도요타(TOYOTA)는 미국에서 급발진 사고와 관련된 수 백 건의 소송에서 이미 수 조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고 이에 따라 피해자 보상과 리콜 명령을 이행했다. 그러나 여전히 공식적으로 ‘급발진은 없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가장 많은 단서를 가지고 있을 제조사가 ‘모르쇠’와 부정으로 일관하니 진실은 30여년째 베일에 쌓여 있다. 우리나라의 자동차회사들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지난 주, 놀라운 탐사보도가 등장했다. KBS의 [시사기획 창]이었다.

미리 밝혀두자면, 해당 방송을 아직 끝까지 시청하지는 못했다. 다만 그 제작 과정을 소개한 자동차전문매거진 [카라이프]의 기사는 반복해서 읽고, 참고했다. (26일에 게재된 이 기사는 31일 현재 조회수 60만건을 훌쩍 넘겼다.) 이에 따르면, 제작진은 급발진의 원인이 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찾아냈을 뿐만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실제 급발진 현상을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재현이 불가능하다고 해왔던 자동차의 급가속 현상. 그 가능성을 실제로 재현해 낸 첫 사례”라는 게, [카라이프]의 평가다.

제작진은 쉼 없이 단서를 찾아 나섰다. 사고 차량의 블랙박스 동영상을 입수하고, 수소문 끝에 찾아낸 해당 차량의 ECU(엔진제어장치)를 분석해 결함을 입증하고, 심지어 현대기아차가 이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도 확인했다. 관련 연구보고서를 바탕으로 실험을 벌여 급발진을 재현해내고, 이에 대한 현대기아차의 답변이 사실인지 재차 검증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급발진 현상과 관련된 부품들의 불량률이 유독 높았고, 그 중 하나인 차량용 발전기가 ‘짝퉁’이었다는 사실을 밝혀낸 부분이었다.

현대기아차가 신차 무상 수리 기간 동안 교체해 준 전기 부품 가운데 다섯 번째로 많이 교체해 준 것이 바로 차량용 발전기다. 그만큼 불량이 많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진짜 충격적인 것은 따로 있었다. 전자스로틀밸브시스템, 스로틀밸브 센서 등 급발진 현상과 관련이 있는 전장 부품의 고장률이 10위 안에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모두 엔진으로 들어가는 공기의 양을 조절하거나 제어하는 부품들이었다. 왜 이렇게 불량률이 높았던 것일까? 또 다시 탐사보도의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고장난 자동차용 발전기 사진

이것이 고장난 발전기다. 내부의 에나멜 와이어, 즉 구리 동선이 시꺼멓게 탄 것이 보인다. ‘혹시 동선이 불량이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볼 수도 있다. 다시 탐사를 시작한 끝에 이를 입증할 충분한 자료를 입수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놀라웠다.

취재팀이 입수한 구리 동선의 성능 성적서다. 규격에 적합하다고 되어 있고 LS전선 품질보증팀장의 직인까지 찍혀 있다. 하지만 LS전선 측에 확인해본 사실은 달랐다. 양식부터가 위조되어 있는 가짜 성적서였다!

LS전선 측은 문제의 성적서는 가짜라며 자사의 외주 제조업체와 대형 구리 동선 유통업체가 이 같은 일을 벌였다고 인터뷰 중 실토했다. 게다가 LS전선 상표까지 붙여서 주요 자동차 부품회사에 납품한 것으로 확인된 것이다. 차량용 발전기, 파워핸들 모터, ABS 모터 등 자동차의 안전과 직결되는 핵심 부품들이 출처를 알 수 없는 재료로 만들어져 그대로 자동차에 부착된 것이다. 사람의 생명과 관련된 부분은 동선 중에서도 가장 고품질을 사용한다. 브레이크나 스티어링 관련 부품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그것보다 단계가 낮은 전선을 쓰거나 짝퉁까지 집어넣은 것이다.

여기에 대해 현대기아차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현대기아 측은 지난해 5월에 이 사실을 확인하고 부품의 불량 여부를 조사했고, 특별한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현대기아차는 제작진이 제시한 나머지 의혹들에 대해서도 충분한 해명을 전혀 내놓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는 와중에 미국에서는 현대기아차의 급발진 사건이 꾸준히 보고되고 있다고 한다. 제작진이 도요타 소송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만난 전문가들은 현대기아차도 도요타와 비슷한 길을 가고 있다고 우려했다. 급발진 원인을 밝히기보다는 땜질 처방을 하거나 사고를 은폐하고 있다는 것.

영상 캡처 사진

“어떻게 스위치에 문제가 생겼다고 해서 운전자가 스로틀 시스템의 제어력까지 잃게 되나요? 이 부분만 봐도 현대자동차의 소프트웨어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고, 거기엔 운전자의 안전성을 보장할 수 있을 만큼의 올바른 안전성 기준이 내장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리콜은 우리에게 커다란 통찰력을 줍니다. 현대기아차는 그저 일회용 밴드를 붙여놓았을 뿐이에요. 거슬러 올라가면 더 큰 문제가 있다는 거예요. 토요타처럼요.”

“저희가 그 중서부 지역 (급발진) 사고 여성분과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근데 그 전에 이미 그때 일어났던 일을 발설하지 않겠다는 계약서를 현대기아 측과 쓴 상태였습니다. 그 사건에서 현대기아차는 그녀의 차를 새로 구매해줬고, 또 다른 자동차도 제공했습니다. 즉 명백하게 은폐를 한 거죠. 그녀의 동의 없이 현대기아는 자동차를 공개되지 않은 곳으로 가져갔습니다. 그리고 뭐가 문제가 있었는지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제작진은 접근 가능한 정보가 제한된 상황에서 중요한 단서들을 잡아 몇몇 가능성을 입증해보였고, ‘급발진은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또 자동차회사들의 급발진 은폐 시도를 밝혀냈다. 프로그램이 ‘급발진 조사를 위한 독립적인 상설 기관을 설치하자’는 결론으로 마무리되는 이유는 분명해보인다. ‘자동차회사들은 진실을 알게 되더라도 스스로 이를 공개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 상대를 꼼짝 못하게 붙들어 놓는 노련한 검객의 솜씨가 느껴진다. 미스터리를 대하는 저널리즘의 자세가 있어야 한다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진실은 어딘가에 반드시 있기 마련이니까. ‘미스터리? 그런 건 없어. 훗’은 개드립…

* KBS [시사기획 창] 해당 방송(2014년 3월25일자) 다시보기 링크 : [급발진은 있다]

** 검색해보니 [시사기획 창]은 2012년에도 급발진 문제를 다룬 적이 있다. 이번 방송을 만든 이석재 기자의 작품. (링크는 여기)

*** 방송이 올라온 인터넷 페이지 댓글 중에는 ‘송파 버스 사고조사도 못 믿는다’는 내용이 있다. 경찰은 ‘운전자가 졸았다’는 1차 조사 결과를 발표했지만, 의혹은 풀리지 않고 있다. ‘송파 버스사고 급발진’이 연관검색어로 뜨기도 한다. 당시 상황을 증언해 줄 운전자가 사고로 사망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이 사건은 적당히 운전자 탓을 하거나 또 하나의 ‘미스터리’로 끝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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